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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수학선생님이 알아두셔야 할 서술형에서 상위 개념으로 푼 학생에 대한 대처 방법 ('8×7+17=73' 오답 처리 논란)

수학 이슈

by holymath 2022. 7. 1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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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수학선생님이 알아두셔야 할 서술형에서 상위 개념으로 푼 학생에 대한 대처 방법 ('8×7+17=73' 오답 처리 논란, 선행학습에 대처한 평가 방법)

8×7+17=73의 계산을 오답 처리한 일본의 초등학교
사진 출처: 트위터

안녕하세요? holymath입니다. 이번 수학 이슈 포스팅은 전국의 수학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교육의 최전선에서 수포자들을 상대하시면서 아이들의 수학 교육을 위해 힘써주시는 전국의 모든 수학선생님들께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감히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포스팅을 작성하는 것이 주제넘은 행동이 될 수도 있으나,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라면서 내용을 시작하겠습니다.

 

● 일본의 초등학교 2학년 계산 문제 평가 논란

먼저 일본의 초등학교 수학 시험 평가 논란을 언급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위에 첨부한 사진은 일본의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푼 계산문제를 교사가 채점한 결과입니다. 해당 내용의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의 초등학교 2학년 문제 평가 논란의 기사 내용
일본의 초등학교 2학년 문제 평가 논란의 기사 내용
일본의 초등학교 2학년 문제 평가 논란의 기사 내용
기사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975513


기사의 내용은 8을 7번 더하고 17을 더하는 계산 문제를 냈는데, 교육과정 상 곱셈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가르치지 않은 곱셈을 이용해서 답을 구했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오답으로 처리해서 논란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논란은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어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SNS를 통해 소식이 전해졌죠. 오답 처리는 너무 한 거 아니냐는 반응도 많지만, 다음과 같이 교육과정과 배우는 단계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에 제법 많은 공감이 달려있습니다.



즉, 답을 빨리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들어있는 수학적 본질과 가치를 교육하기 위함이고, 선행학습을 막기 위해서 오답 처리는 적절한 조치였다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 특히, 수학선생님께서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위의 사례는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수학 서술형 문항을 평가할 때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헤론의 공식이나 사선 공식을 이용하는 경우,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기 위해 크래머 공식을 이용하는 경우, 극한값을 구하기 위해 로피탈의 정리를 이용하는 경우, 고1 학생이 1학년 문제에서 미분을 이용하는 경우 등등 학생들이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지식을 활용해서 풀이와 답을 쓰는 경우가 많죠. 이에 선생님들은 의도하지 않은 학생들의 풀이로 인해 채점에 곤란을 겪는 일은 전국 어느 학교에서나 발생합니다.

이 경우, 담당 선생님들끼리 상의해서 채점의 기준을 정하는데 선생님들의 의견에 따라 해당 풀이에 대해 감점하거나 아예 0점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학생과 학부모가 반발하여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제법 발생하죠. 이런 일은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선생님들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으며, 오늘의 포스팅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답을 제시하기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물론, 위의 기사의 댓글과 마찬가지로 가르친 내용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가르치지 않은걸 작성하면 불이익을 받는것이 당연하므로 애초에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지 않은 상위 개념을 이용해서 답을 쉽게 구한 학생들에게 점수를 온전히 부여한다면, 교육과정에 충실해서 답을 적은 학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것이므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사실상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지 않은 내용으로 문제를 풀면 불이익을 주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어진 경향을 보입니다.


로피탈 정리로 답을 구한 풀이에 점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
로피탈 정리로 답을 구한 풀이에 점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
로피탈 정리로 답을 구한 풀이에 점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
로피탈 정리로 답을 구한 풀이에 점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
로피탈 정리로 답을 구한 풀이에 점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
로피탈 정리로 답을 구한 풀이에 점수를 줘야 하는지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


그렇다면 과연 이런 분위기에 따라서 가르치지 않은 상위 개념을 이용하여 서술형 문제를 푼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고 그에 대해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교육과정을 근거로 대응해서 그 민원을 기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 교육 평가의 본질

이 문제에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교육평가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다들 공부하셨던 내용이죠. 다음은 '수학과 학습지도와 평가론(강옥기)'에 소개된 수학과 평가 기준입니다.

NCTM이 제시한 수학과 평가 기준
1. 중요한 수학(mathematica for all) - 평가는 모든 학생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할 수 있는 수학을 반영하여야 한다.
2. 학습 촉진(enhance mathematica leaning) - 평가는 수학 학습을 촉진하여야 한다.
3. 공정성(equity) - 평가는 공정성을 조성하여야 한다.
4. 공개성(openess) - 평가는 공개된 과정이어야 한다.
5. 타당한 추론(valid inferences) - 평가는 수학 학습에 관한 타당한 추론을 증진하여야 한다.
6. 일관성(coherence) - 평가 과정의 각 측면은 수업의 목표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여러 내용이 있지만 여기서는 2번째와 4번째 내용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2번째 내용은 평가가 학생의 성취도를 요약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학습지도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을 통해 학생에게 개선할 점과 좋은 점을 알림으로써 학습을 촉진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학생에게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처음에 제시한 초등학교 사례에서 문제를 틀린 학생은 개념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곱셈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오답 처리를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생의 학습 동기와 의욕은 어떻게 될까요?

이어서 4번째 공개성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4. 공개성(openess) - 평가는 공개된 과정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무엇이 평가되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들이 학습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여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평가되는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표현 방법을 몰라 자기의 지식을 바르게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평가의 과정이 공개적이기 위해서는 평가의 기준이 학습 과정에서 강조한 것이라야 하며, 평가 기준의 선정 과정에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학부모들에게도 평가의 기준을 사전에 알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하 생략)

이 말은 즉, 평가를 할 때는 학생에게 어떤 내용을 평가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일본 초등학교의 사례를 들면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배운 덧셈을 아이들이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해당 문제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에서 곱셈을 이용한 풀이는 인정할 생각이 없었죠. 그렇다면 해당 문제에 반드시 덧셈을 이용하여 이 상황을 표현하라는 안내를 함으로써 무엇을 평가할 것인지를 밝혔어야 하는 겁니다. 문제에서 안내만 제대로 했으면 학생에게서 이러한 풀이가 나올 일이 없었겠죠.

이 내용은 위에서 얘기했던 사선공식, 헤론의 공식, 로피탈의 정리 등의 사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학생에게서 이런 풀이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면 서술형 문항을 제작할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극한 문제를 낼 때 "로피탈의 정리를 이용한 풀이는 인정하지 않음"이라고 안내만 제대로 했다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풀이를 작성할 것이고, 그래도 로피탈 정리를 이용해서 푼 학생이 있다면 문제의 요구를 위반한 것이므로, 안내한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0점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겁니다.

 

● 평가 문항 제작의 유의점

여기서 "안내를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배운 내용 안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다음 내용을 추가로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교육평가-이해와 적용(박도순)'의 일부 내용입니다.

'교육평가-이해와 적용(박도순)'의 일부 내용
'교육평가-이해와 적용(박도순)'의 일부 내용
'교육평가-이해와 적용(박도순)'의 일부 내용
'교육평가-이해와 적용(박도순)'의 일부 내용
'교육평가-이해와 적용(박도순)'의 일부 내용

사실 위의 5개의 사진 중에서 2개는 이전에 포스팅했던 초등학교 분수 문제 논란(https://holymath.tistory.com/10)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사실 이 포스팅의 주제는 넓이 개념을 알고 있을 경우 정답을 맞힐 수 없는 분수 문제 논란과 거의 비슷합니다. 분수 문제 논란은 선택형 문제에 대한 얘기이고 이번 포스팅은 서술형 문제에 대한 얘기일 뿐 그 본질은 같죠. 

결국 위의 자료에 의하면 서술형 문항을 만들 때는 응답의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출제자의 의도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밝혀야 하며, 필요한 경우 채점기준을 미리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분수 문제 논란에서도 언급했듯이 문항을 만들 때는 제삼자가 보기에도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도록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성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고 집에서만 공부했던 수학 천재가 시험 기간에 갑자기 학교에 추가 입학을 하여 시험에 응시를 하였고, 서술형 문항에서 답을 구하는 여러 가지 고급 스킬을 알고 있었다 해도 문제를 읽었을 때, 모범답안과 같은 풀이를 작성할 수 있도록 문제의 조건과 의도를 충분하고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문항 제작을 위해서는 막연하게 "~의 값을 구하시오."와 같이 서술형 문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리를 이용하여 ~의 값을 구하는 과정과 답을 쓰시오."와 같이 구체적인 안내를 해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문제를 단계별로 쪼개서

(1) ~의 길이를 $x$라 할 때, ~의 값을 $x$에 대한 함수로 나타내시오.
(2) (1)에서 구한 함수를 이용하여 ~의 길이의 최댓값을 구하시오.

와 같이 발문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선행학습 금지법의 의미와 학생의 본분

학생들이 서술형 문제에서 선생님이 의도치 않은 풀이를 작성하는 주된 원인은 사실 선행학습에 있죠. 따라서 선행학습 유발을 막기 위해 교육과정을 벗어난 풀이는 인정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반인은 물론 선생님들 중에서도 선행학습 금지가 가진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네이버 검색을 통해 그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네이버 검색 - 선행학습 금지법
네이버 검색 - 선행학습 금지법


이 내용의 의하면 선행학습을 통해 제재를 가하는 주된 대상은 사교육 기관과 학교 및 거기에 종사하는 교육자들입니다. 즉,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주어진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과목의 진도를 나가거나 시험문제를 출제해서는 안 되고, 학원에서는 선행학습을 광고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을 뿐, 학생을 제재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선행학습 금지법이 학생이 본인의 학년과 교육과정에 맞지 않은 내용을 배우거나 알아선 안 되는 법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위 개념을 미리 아는 것이 마치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거죠. 그러나 학생이든 누구든 뭔가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걸 금지하는 법은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자유민주주의 국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정 개념을 알아선 안 된다는 법이 존재한다면 그건 학습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죠. 학생의 본분은 열심히 배우는 거예요. 즉, 선생님이든 강사님이든 부모님이든 누가 와서 무엇을 가르치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열심히 배우는 것이 학생의 의무이지, 배워야 할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건 학생의 역할이 아닙니다. 선행학습의 문제점은 선행 내용을 배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배우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도록 가르치거나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학생은 배우면 배울 수록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지, 이걸 왜 배웠고 왜 알고 있냐고 추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어떤 학생은 수학 자체에 호기심을 느끼고 천재적인 소질을 보여서 이미 중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에서 배우는 해석학, 대수학, 기하학 등을 스스로 공부하여 마스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 중에 누군가는 꿈이 수학자이고 더 열심히 배우기 위해 학원이나 각종 사교육의 도움을 이용할 수도 있는 거죠. 그것을 잘못이라고 할 순 없는 겁니다. 이런 학생이 서술형 문항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방법으로 풀었는데 만약 선생님이 점수에 불이익을 주거나 야단을 친다면 그 선생님은 학생의 앞 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 선행학습에 대처하는 서술형 평가 방법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종합하여 서술형에서 출제자의 의도에 반하여 교육과정을 벗어난 방법으로 답을 구한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결론을 내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생님이 의도하신 풀이만 정답으로 인정하고 싶으면 문항을 만들 때 구체적인 안내를 통해 분명한 의도를 드러내야 하며, 그런 의도를 삽입하지 못한 채로 문제를 출제했을 경우, 학생이 어떠한 방법으로 답을 구하든 그 풀이에 오류가 없으면 그에 대한 채점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서 정상적으로 채점하고 점수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 말에 아직 납득이 되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학생의 입장에서 이것 하나만 생각해 주세요. 그 풀이를 작성한 학생에게 잘못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 학생에게 잘못이 있는가?

예를 들어, 고등학교 2학년 수학Ⅰ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시험 때 다음과 같이 서술형 문항을 출제했고, 학생들에게 코사인 법칙을 이용하여 각 하나를 구하고 사인 법칙을 통해 넓이를 구하는 풀이가 나오길 기대했습니다.

"세 변의 길이가 각각 5, 6, 7인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과정과 답을 쓰시오."

여기에 어떤 학생은 헤론의 공식을 이용하여 정확한 계산 과정과 답을 적었습니다. 이 학생에게 잘못이 있나요? 있다면 뭘 잘못했나요?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배웠다? 가르친 대로 풀지 않았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전부 틀렸습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내용을 배웠다? 위에서 알아봤듯이 선행학습은 선생님을 제한하는 법이지 학생을 제한하는 법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학생은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잘했다고 칭찬을 해줘야지 이걸 왜 배웠냐고 야단치면 안 되는 거죠. 선행학습은 안 하면 불리함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그걸 공부하는 학생 개인이 잘못된 게 아닌 겁니다.

가르친 대로 풀지 않았다? 선행학습 방지를 위해 교육과정별로 배우는 내용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하는 것 또한 선생님의 의무이지 학생의 의무가 결코 아닙니다. 학생에게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배웠든 그걸 배워서 활용할 줄 알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그걸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중요한 게 아닌 겁니다. 위에서 이미 예시로 들었지만, 가르친 대로 풀어야만 점수를 받는 평가방식이라면, 학교를 안 다니고 집에서만 연구했던 수학 천재가 학교에 추가 입학을 하여 시험을 볼 경우, 이 학생은 다른 학생들보다 수학 실력이 월등히 뛰어남에도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참사가 벌어지겠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는 천재 수학자와 수학을 가르치는 담임교사가 대조적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주인공이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장면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주인공이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장면

수학자는 ‘틀린 답은 많지만 풀이 과정이 옳다’고 하면서 주인공의 가능성을 봐주죠. 반면, 담임교사는 수업 시간에 문제에서 오류를 지적한 주인공에게 조건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더라도 출제자가 의도한 대로 답을 찍어야 한다면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주인공을 밖으로 내쫓습니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문제를 풀 때 중요한 건 출제자의 의도이다. 출제자가 콩을 팥이라고 하면 팥으로 알아듣고 눈치껏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담임교사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여기에 대한 정확한 답을 드리자면 시험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가 만든 문항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문항을 만들 때 출제자의 의도를 충분히 안내하지 않았으면, 출제자의 손을 떠난 그 문항의 의도는 더 이상 출제자의 의도가 아닌 거죠.

이제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헤론의 공식을 쓴 학생에게 잘못이 있나요? 선생님이 출제한 서술형 문제는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라고만 했을 뿐, 풀이 방법과 관련된 어떠한 의도나 제안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 문제를 본 학생의 입장에서는 문제에서 요구한 대로 어떻게든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본인이 배운 내용 중에서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이나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택하여 답을 쓸 수밖에 없는 거죠. 즉, 헤론의 공식을 사용한 것도 문제에서 요구한 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결국 헤론의 공식을 쓴 학생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잘못이 없다면 이 학생에게 불이익을 줘선 안 되는 겁니다. 따라서 헤론의 공식을 이용한 풀이에 대한 채점기준을 추가로 만들어서 그 과정에 오류가 없다면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채점해야 하는 거죠.

 

● 가르치지 않았으므로 증명해야 점수를 줘야 한다?

그런데 선생님 중에는 "헤론의 공식을 가르친 적이 없으므로 이 공식이 참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공식을 직접 증명하고 사용해야 만점을 줘야 하고, 증명 없이 사용했다면 그 부분에서 감점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헤론의 공식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증명되어 대중들에게 알려진 공식이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헤론의 공식을 택한 학생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없는데 모범답안을 택한 학생은 그 방법을 증명 없이 사용해도 점수를 주는 반면, 헤론의 공식을 택한 학생에게는 그 복잡한 증명을 보여야만 감점을 면할 수 있도록 채점하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하는 거죠. 특히, 만약에 1학년 수학 문제에서 미분을 이용하여 푼 학생을 채점하는 경우라면 학생에게 극한의 정의부터 시작해서 미분계수의 정의, 도함수의 정의, 도함수의 성질, 다항함수 미분 공식까지 전부 증명해야만 점수를 주겠다는 논리가 되므로 사실상, 상위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 증명을 해야만 점수를 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냥 점수를 안 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중고등학교의 수학은 증명의 비중이 크지도 않으며, 중학교 1학년 수학에서 배우는 뿔의 부피, 구의 부피, 고등학교 확률과 통계에서 배우는 중심극한정리와 관련된 정규분포의 성질 등 증명 자체를 빼고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 내용도 존재합니다. 하물며 가르쳐주지 않은 개념으로 풀었다고 해서 학생에게 무려 성적을 걸고 그 개념의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죠.

 

● 누구의 잘못인가?

물론, 교육적 측면에서 교사가 의도하지 않은 풀이가 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실 겁니다. 어떤 학생은 수업시간에 배운 개념으로 충실하게 과정과 답을 써서 냈는데 어떤 학생은 교육과정에는 없고 학원에서 배운 헤론의 공식으로 간편하게 답을 구하고 똑같은 점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또한 역으로 시험의 공정성을 해치는 동시에 가르친 대로 푼 학생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결국 선행학습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학생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럼 결국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건 누구의 잘못일까요? 저는 감히 이 자리에서 이런 상황은 문제를 출제하신 선생님의 잘못임을 말씀드립니다. 시험은 성적과 직결되는 민감한 교육활동이므로 시험기간만 되면 어느 학교든 부정행위부터 모든 규정과 각종 유의사항을 학생들에게 철저히 교육시킵니다. 교육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책임은 교육하지 않은 선생님에게 돌아가니까요.

마찬가지로 시험 문제도 명확한 안내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결국 선생님의 잘못입니다. 선생님은 평가의 전문가이시며, 앞에서 알아본 교육평가 이론은 선생님이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공부하신 내용이고 평가 업무에서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서술형 문항에서도 헤론의 공식을 이용하면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구 하나만 넣었으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선생님이 문제를 치밀하게 내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벗어난 방법으로 손쉽게 답을 구한 학생이 발생하는 것이며, 평가의 공정성을 해치고 선행학습을 조장하는 결과를 만드는 거죠. 그리고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그 공정성을 살리겠다고, 상위 개념을 이용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가한다면, 그 잘못의 책임을 죄 없는 학생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포스팅을 마치며

제가 드리고자 했던 말씀은 사실 포스팅의 앞에서 소개했던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모두 들어있었습니다.


처음 소개한 기사의 마지막 부분


시험은 가르친 내용을 얼마나 잘 성취했는지 평가하는 것이 기본 목적인 것은 맞지만, 일반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학교 수업에 복종하는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도록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교육의 목적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각종 정보가 넘치는 복잡한 세상에서 자신의 주관과 창의력을 키우고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지, 지배계층에게 잘 복종하도록 통제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오늘 소개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포스팅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 있었다면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학생들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항상 교육의 최전선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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